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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태종 이방원 업적, 조선의 국가체제가 완성되다

by 자몽맛에이드 2020.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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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


이번 포스팅에서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이후, 아들인 세종을 위해 조선의 국가체제를 완성시키는 데 노력한 태종 이방원의 업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태조 이성계에게는 8명의 아들이 있었는데요.


본처 신의왕후 소생 방우/방과(정종)/방의/방간/방원(태종)/방연

계비 신덕왕후 소생 방번/방석


태조 이성계는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 중 왕자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는데, 본처인 신의왕후 한씨에게는 이방원 외 5명의 정정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린 방석이 세자가 되자,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 그리고 정도전과 갈등이 격해집니다. 이에 태조 이성계는 결국 재위 7년만에 왕자들의 권력투쟁에 (왕자의 난) 실망하여 물러납니다. 태조의 둘째 아들인 정종도 2년 만에 물러난 뒤, 왕위는 태조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에게 돌아갑니다. 


태종 이방원은(1367~1422) 1400~1418년, 18년동안 재위했으며,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고 정몽주를 제거하는데 앞장서는 등 개국에 공로가 크고 능력도 있었으나, 아버지 이성계의 신임을 얻지 못해 왕위 계승에서 탈락했습니다. 이대로는 왕위를 얻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이방원은 이복동생 세자 방석과 정도전 일파를 무력으로 처단하고, 친형인 방간의 도전을 물리치고 정종을 압박하여 왕위를 물려받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왕위를 얻기 위해 일으킨 사건>


"고려말 충신 온건파 신흥사대부 정몽주 제거"

"1398년 재상 중심의 신권정치를 모색한 정도전 제거"

"1차 왕자의 난 - 계비 신덕왕후 소생 이방석, 이방번 제거"

"2차 왕자의 난 - 본처 신의왕후 소생 넷째 이방간 제거"

"1400년 2차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이 조선 3대 왕 태종으로 등극"



태종 이방원은 왕위에 오른 후 태상왕 이성계와 심한 갈등을 일으켰으나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권세있는 신하는 공신이든 처남이든 가리지 않고 처단하면서 조선의 국가체게와 왕권강화에 힘씁니다. 


* 1405년 한양천도, 창덕궁 건설 (왕자의 난으로 어지러워진 궁궐을 피하기 위해)

* 1412년 청계천 정비 및 공사 / 경복궁 내 경회루 건설

* 1416년 도첩제 실시

* 6조 장악으로 의정부 재상중심의 정책운영을 국왕중심체제로 바꿈

  6조 : 이조 (인사관리), 호조 (재정경제), 예조 (문화관광부, 외교부), 병조 (국방부), 형조 (법무부), 공조 (건설교통부, 국토해양부)

* 언론기관인 사간원을 독립시켜 대신을 견제

* 궁궐 신문고를 설치하여 반란음모를 고하게 함

*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사원의 토지를 몰수한 후 전제개혁을 마무리

* 개인 소유 사병을 혁파 

* 공노비를 조사하여 해방

* 지방 호족을 억압하여 군역을 지도록 함

* 1418년 충녕대군 왕세자 책봉(세종)


왕이 되기위해 자신의 형제들을 죽이고 견제했던, 잔인한 면모를 보인 이방원이지만 훗날 세종이 되는 자신의 셋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전 왕권강화와 조선의 기틀, 국가체제를 완성시키는 데 노력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조선 군주 중 한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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