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1392년 7월 17일 이성계에 의해서 개국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조선왕조 500년의 시작인 것이죠. 조선 이전에는 다들 아시다시피 고려라는 나라였는데, 이 글에서는 어떻게 고려라는 나라가 멸망하고 이성계가 등장해 조선이 건국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개혁군주 공민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우왕(禑王,1374~1388)은 공민왕과 신돈의 비첩인 반야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공민왕은 다섯 명의 첩을 두었으나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뒷날 이성계 일파는 우왕이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라 신돈의 아들이므로 진짜 왕씨가 아니라고 하며 폐위시키고 창왕(昌王)을 옹립합니다.
"고려 말, 권문세족의 무능한 외교, 대농장 소유로 인한 백성들의 어려움, 왜구의 창궐"
고려 말 사회상은 익히들어 아시겠지만 대농장을 소유하는 권문세족들에 의해 농민들은 2중 3중으로 수탈을 당해 백성들의 생활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였습니다. 게다가 신흥하는 명나라를 적대하고 멀리 몽고지방으로 쫒겨간 북원(北元)을 가까이하는 시대를 역행하는 우를 범했고, 설상가상으로 왜구의 창궐은 고려를 더욱 괴롭혔습니다. 왜구들은 수십 수백척의 배를 몰고 다니면서 해안지역에 상륙하여 식량과 문화재 등을 닥치는대로 약탈해갔습니다. 이로인해 서해와 남해 연안지역의 기름진 농토들이 황폐화되고 주민들은 산 속에 숨어삽니다. 조세를 운반하는 배들도 길이 막히고 개경이 점령당할 위기에 놓이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위기속에 민중들은 깨끗하고 힘있는 영웅이 출현하기를 고대했고, 이때 나타난 인물이 최영(崔瑩, 1316~1388)과 이성계(李成桂, 1335~1408) 장군입니다.
이 두 사람은 홍건적 및 왜구토벌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최영은 우왕의 장인으로 귀족반열에 있었고 최영보다 19살 어린 이성계는 본래 변방인 영흥지방 토호의 후예로서 아버지 이자춘이 공민왕때 쌍성총관부를 탈환할 때 협력한 공으로 개경에 와서 벼슬을 한 시골출신 신흥 무장이었습니다.
여러 전투에서 이 두사람이 공을 세우면서 권력이 두 사람에게 모이게 되었는데, 여기서 이성계 휘하에는 정도전, 조준을 비롯한 급진파 사대부들이 결집되어 미래의 혁명을 설계해가고 있었는데요. 이를 눈치챈 최영은 이성계를 제거하기 위해, 명나라가 옛 쌍성총관부 땅을 직속령으로 만들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한다는 통고를 받자, 최영은 이성계에게 요동 출병을 명령하고 그 곳 주둔군 사령관으로 임명하려고 합니다.
이성계는 이러한 명령에 대해 그 유명한 4대 불가론을 내세우며 요동공격을 반대했는데, 최영이 이를 묵살하면서 결국 출병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압록강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우왕과 최영을 제거해버리고, 조민수와 이색의 추천을 받아 우왕의 아들 창왕을 세웠는데, 당시 우왕의 나이가 9세라 왕권을 행사하기 어려웠기에 사실상 실권은 이성계에게 있었습니다.
4대 불가론
1.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일은 옳지않다.
2. 여름철 군사동원은 부적합하다.
3. 요동공격을 하는 도중에 왜구의 침범이 우려된다.
4. 여름철(우기)에는 활의 아교가 늘어지고, 무기가 녹슬며 병사들의 전염병이 우려된다.
이후 창왕을 폐위하고, 신종의 7세손인 공양왕을 옹립했으나 허울뿐인 왕이었고, 이내 실권을 가진 이성계에게 모든 권한을 넘깁니다.
전제개혁(토지개혁)으로 권문세족의 경제기반을 무너뜨린 뒤에 남은 문제는 새 왕조의 개창을 반대하는 온건개혁파 사대부를 제거하는 일이었는데, 공양왕 4년에 이성계가 말에서 말마하는 부상을 당하자 정몽주를 비롯한 인사들이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격살하죠. 그 후 1392년 7월 17일 50명의 신하들의 추대를 받은 이성계가 왕위에 올랐고 조선왕조가 개창됩니다.
※ 조선왕조라는 새 정권은 왕조교체를 민심과 천심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자부하고 이를 맹자가 말한 역성혁명으로 정당화 했습니다. 조선왕조의 개창은 무력사용을 최소화시키고 개혁을 통한 민심의 지지와 도평의사사의 인준을 거쳐 권력의 정당성을 얻어낸 정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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