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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태조이성계 새 국호 조선뜻, 새 수도 한양천도 이유와 의미

by 자몽맛에이드 2020.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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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국호 조선의 뜻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서 제9대 성종에 이르는 15세기 10년간은 새국가의 이념과 통치질서가 틀을 잡아가던 시기였습니다. 태조(1392~1398)때는 정도전, 조준, 남은 등 개국공신이 실권을 쥐고 국호를 제정하고 통치이념을 정비했으며, 태조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는 등 새 국가의 기초를 다집니다. 특히 정도전이 왕조의 설계자로서 큰 역할을 맡습니다. 


국호는 고조선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담은 조선(朝鮮)과 이성계의 고향인 화녕(和寧)이라는 두 개의 국호를 만들어 명나라 황제와 상의하여 조선을 정합니다. 조선은 단군조선에서 역사의 유구성과 천손후예의 자부심을 찾고 정전제와 8조교를 시행하여 조선을 도덕적 이상국가로 만든 기자조선에서 도덕문명의 뿌리를 찾아 이를 계승한다는 역사계승의식이 담겨있습니다. (위만조선은 찬탈자이므로 계승할 가치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국호가 조선으로 정해지고, 단군숭배가 강화된 것은 민족의식이 한 단계 심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고려가 고구려의 영광을 계승한다는 뜻으로 국호를 고려라고 했으나, 고구려는 삼국의 하나로서 민족을 대표하는 나라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이에 비해 조선은 삼국의 공통된 뿌리이므로 삼국유민이 모두 숭앙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삼국유민 의식을 청산하여 민족통일의식을 높이는데 이바지했습니다. 




■ 새 수도 한양천도


태조 3년(1394) 10월 새 왕조는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깁니다.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한양은 남쪽에 한강을 끼고 있어서 수로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주변에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천혜의 요새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일찍이 백제가 이곳에 근5백년간 수도를 정하여 강국을 건설했고 뒤에는 고구려, 신라도 이곳을 점령하여 삼국문화가 골고루 스며들어 있어서 지방색이 가장 적은 곳이기도 합니다. 고려시대부터 한양은 명당으로 보았고, 고려왕들도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려고 몇 차례 시도했으나, 한양의 주인공은 왕씨(王氏)가 아니라 목자(木子)의 성을 가진 이씨(李氏)가 된다는 믿음이 민간에 널리 퍼져 천도를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왕조를 개창한 이성계는 바로 자신이 한양에서 밝고 깨끗한 새 세상을 열 수 있는 주인이라고 생각하여 한양천도를 결행하게 된 것입니다. 한양건설은 천도 후에 이루어졌는데, 통치의 중심공간인 궁궐을 백악산 아래에 남향으로 짓고, 신주를 모시는 종묘, 땅과 곡식의 신을 모신 사직을 궁궐 좌우에 건설하는 등 태조 4년(1935)년부터 도성을 건설합니다. 


수도 한양에는 관료, 수공업자, 상인, 주민들이 모여들어 약 10만명의 인구를 헤아리게 되었으며, 무당이나 승려는 도성 안에 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도성 밖 10리를 성저십리라 하여 개인의 무덤을 쓰거나 벌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는데, 오늘 날 그린벨트라 불리는 지역정도로 묶어두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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