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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박물관학 개론 - 고고학

by 자몽맛에이드 2016.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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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02. 한국

<박물관학 개론 - 고고학>

1. 박물관의 정의
 박물관에 대한 개념 정의는 국제박물관협회와 영국박물관협회, 미국박물관협회에 의해 정의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에 대한 개념을 차별하여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국내의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 이하 박미법에서는 박물관을 문화,예술,학문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의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역사,고고,인류,예술,과학,기술 등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관리하고 보존,조사,연구,전시하는 시설을 말한다. 한 마디로 박물관을 정의하자면 '박물관은 궁극적으로는 현재와 과거의 문화유산과 자연 유산을 미래에 전승하고 사회화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기관이다. 박물관은 인류에 의해 생산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수집하고 보존 조사 연구하여 이를 일반 대중에게 제공하기 위해 전시 교육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2. 문화의 정의
 문화란 어떤 집단의 구성원들이 지닌 사유, 정보교환, 행동, 생활 등 그 집단이나 사회로부터 습득, 공유, 학습 전달되는 과정과 행동 및 생활양식 전체를 포괄하는 것으로서 그 속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 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즉 문화란 습득된 행동과 행동의 여라 결과와의 종합체이며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

 

3. 고고학의 정의, 무덤의 고고학
 선사문화를 밝히는 유일한 방법이 고고학이며, 한자로 '고고(考古)'라고 쓴다. 우리나라 한자로는 옛 고()가 먼저지만 중국에서 먼저 고()를 앞에 썼기 때문에 考古學이라고 표현하며, 고고학의 연구범위는 대체로 구석기 시대부터 1950년 이전까지로 보고 있다.
 고고학의 고전적 정의는 '과거 인류가 남긴 물질적인 자료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현대적 정의는 '과거 인류들이 남긴 물질적인 자료(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당시의 문화, 즉 행위, 사회조직, 이념들을 복원하고 그들의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였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되고있다.
 고고학 연구에 있어 필수적인 것은 유적,유물이라는 연구 자료를 생산하는 발굴조사(목적의식 중요)이다. 유적은 인간의 의식주와 관계된 부동산적인 것의 총칭이며, 유물은 동산적인 특징인데, 이는 운반 가능한 도구류를 의미한다.
 자료 수집 순서는 보통 다섯 단계로 나누는데(유적,유물 확인-자료수집 및 발굴조사-자료정리 및 세척, 복원-조합 검토 분석-해석과 복원) 이 단계를 정확히 수행하여 밝혀내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고고학의 최대 특징은 역사 기록상에 없는 유일한 유적 보고서이며, 문헌 등의 기록상에 나타나있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유적으로서 밝혀 낼 수 있다는 점이다. 무덤의 경우 그 지역이나 당시 시대의 특징이 나타나기 때문에 고고학에서 무덤은 아주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되며, 무덤의 고고학이라고도 일컫는다. 실제로 발굴된 유물 중 대다수가 무덤에서 발굴된다. (군집무덤, 지석묘)

 

4. 발굴이란?
 일반적으로는 땅 속에 파묻힌 것을 파내는 일을 뜻하지만, 고고학에서는 과거의 역사적 유물,유적을 파내어 지상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고고학에서의 발굴은 발굴된 유물을 통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연구하고 밝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연구 과제이다.

 

5. 선서시대와 고고학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석동철로 이행되는 것으로 시작)
 인류사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역사적 시기구분을 할 때 문자의 사용 유무에 따라 크게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하며 선사시대는 무 문자 시대이다. 역사시대는 대략 2천 년 전인 서기 0년을 기점으로 하고 역사적 기록이 없었던 시대를 선사시대라고 하는데 여기서 선사시대는 전체 인류사에 99%이상의 시간대를 가지고 있다. 현재 한국 고고학에서 통용되고 있는 보편적인 시대 구분법은 인류가 사용한 도구에 따라 석동철로 구분하고 있다. 석동철로 이행되는 3시기 구분법을 정의하게 된 것은 1836년 덴마크 왕립 박물관의 톰센이 인류가 석동철의 순서로 도구를 사용하였고, 실제로 이 세 가지로 분류됨을 밝혀 이러한 구분 체계를 발표한 것이 시작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시대 구분에도 큰 근간이 되고 있으며, 아직도 철기시대로 보는 관점도 있다.

 

6. 선사시대별 문화적 특징
1)구석기시대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단계로 돌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여 신석기 시대에 접어드는 시기까지를 말한다. 주로 채집과 사냥이 위주였기 때문에 정주사회 형성과 문화의 발달이 불가능했다. 구석기는 크게 전기 중기 후기로 나뉘는데, 전기에는 돌의 찍개류와 주먹도끼, 사냥돌 등 대개 하나의 석기가 여러가지 용도로 쓰였다. 중기에는 가공기술이 발달하여 하나가 다목적이 아닌 여러 석기가 발달하며 돌려떼기 기법도 등장한다. 후기에는 크기가 매우 작고 모양이 세련된 잔석기가 만들어진다. 구석기시대 유적은 평양, 부산, 밀양, 거창, 진주 등 여러 등지에서 확인되고 있다. 후기 구석기 위후 중석기도 있다고 하지만 보통은 바로 신석기 시대로의 이행으로 보고있다.
*의식주
전기 구석기는 기후가 따뜻하여 열대동물과 함께 공존하며 짐승이나 물고기 혹은 나무열매를 채취하여 먹고 살았으며, 집은 동굴이나 바위그늘을 이용했다. 중기 구석기 이후로는 지구가 추워지면서 생태계가 변화해 추위를 이기기 위해 불을 발견하게 되고, 음식을 익혀 먹었다. 후기 구석기에는 동굴에서 벗어나 움집을 지어 살기도 했고, 개나 물고기를 조각하는 등 소박한 예술 형태도 나타난다.

2) 신석기 시대
 대략 기원전 6천년~1천년 시기로 보고 있으며, 토기의 사용, 마제석기의 제작 및 사용, 식량 생산 등의 문화가 있다. 토기는 진흙을 불에 구워서 만들었고, 음식물을 저장하거나 조리하는 데 활용했다. 전국적으로 200여 소에서 출토되고 있고 종류로는 덧무늬 토기, 빗살무늬 토기, 이중구연공렬문 토기 등이 있다. 신석기 시대에는 타제석기와 마제석기를 혼용하여 사용되었고 늦은 시기일 수록 간석기의 사용비율이 증가한다. 이 밖에 발찌, 귀걸이 등 꾸미개도 출토된다.
주거지는 주로 동굴이나 강가, 바닷가의 원형계 수혈식이고, 생업으로는 어로와 사냥을 했다. 사회는 씨족을 기본구성으로 하는 부족사회였고, 신앙은 주술적, 무속신앙적 형태였다. 묘는 간단한 토광묘와 옹관묘이다. 식량 생산에서 논경지 확인 문제가 관건인데, 신석기 논 유적은 가로 세로 5미터 전후여서 대체로 제대로 된 농사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지만 아무 작물 도는 벼와 비슷한 밭작물을 재배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의식주
신석기 시대는 개량된 생활도구에 힘입어 의식주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짐승가죽에서 방추를 이용하여 옷을 만들어 입었고, 조개나 구슬로 장신구를 만들어 달기도 했다. 음식은 곡물을 재배하는 농경으로 충당했고 갈돌로 곡식이나 열매를 갈아서 먹었고, 가축도 길렀다.
혈연을 바탕으로 씨족단위로 모여서 독립된 마을을 형성하고 살면서 생산 활동과 제사활동을 공동으로 했는데, 다른 씨족의 영역을 침범하면 벌을 받거나 무력으로 응징을 받았다. 씨족끼리 배타적이었지만 결혼에 있어서는 족외혼을 하였고, 이를 통해 부족이라는 큰 공동체가 형성된다.

3) 청동기시대
우리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대개 기원전 10세기 무렵부터 철기문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기원 전후까지 약 1천 년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3세기 무렵 중국으로부터 철기문화가 서서히 들어오면서 청동기 문화와 함께 공존하였기 때문에 이때는 후기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로 본다.


(1) 청동의기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는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청동으로 만든 농기구는 아직까지 별견된 예가 없고, 청동 무기도 극소수다. 전기 청동기 유물은 적으나, 후기로 들어서면 함경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서 많은 종류의 의기가 출토된다.
청동검
청동검은 무기보다는 제관이나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기의 성격이 강하며, 전기에는 비파형동검이 유행했고, 후기에는 한국식 세형동검으로 바뀐다.
-비파형 동검 : 비파형 모양으로 요령지방에서 많이 발굴되어 요령식 동검이라고도 한다. 함경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서 약 40여 자루가 발굴되었다. 초기 철기시대로 들어오면서 비파모양이 사라지고 가늘고 긴 몸체의 세형동검으로 바뀌게 된다.
-세형동검 : 청동기 시대 후기에서 초기 철기시대 유물로써 한국식 세형동검이라고도 하며,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된다. 거푸집도 발견되어 자체 생산된 양식임을 알 수 있다.
(청동기 시대에 오리는 하늘나라의 전령이라는 생각에서 신성시되어 성역을 상징하는 솟대에도 나타난다. 이것이 제관이 사용한 청동검의 손잡이에 장식되었다.)
청동거울
청동검과 함께 제관의 상징적 지물로 전기에는 거친무늬거울, 후기에는 잔무늬거울로 바뀐다. 제관이 햇빛을 반사시키는 용도로 사용했으며, 거울에 달린 꼭지는 손목을 묶을 때 끈을 끼우는 장치이다. 꼭지가 많은 잔무늬 거울은 한반도 청동기 시대에만 나타나고 있어 세형동검과  함께 우리나라 청동기의 상징적인 유물이 되었다.
청동방울
제관의 상징적 지물로 반드시 쌍으로 출토되며 가지방울과 팔모방울이 대부분이다. 방울에는 고사리 무늬를 비롯한 기하학 무늬가 새겨져있어 신성함을 나타낸다. 청동기와 함께 많은 대롱옥과 곡옥 등 많은 옥 장식도 출토되었다. 이 옥들은 목걸이로 사용해 역시 제관의 몸치장에 사용했다.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는 생활문화보다도 주로 의식용 장식문화라는 성격을 강하게 띠는 유물이 전국적으로 출토된다.

(2) 토기
청동기가 시작되는 기원전 10세기부터 빗살무늬가 사라지고 민무늬 토기가 나타난다. 민무늬 토기는 생활토기와 제의에 사용하는 의기가 별도 제작되어 상당히 다양하며 군장사회에 들어서면 지역성을 강하게 띠게 된다.
미송리형 토기
평안도 미송리 동굴유적에서 발견되어 미송리형 토기라 불린다. 함께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고조선 토기로 생각된다.
팽이모양토기
아가리가 크고 바닥이 좁은 모양이 팽이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대동강 유역에만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어 지역성이 강한 토기이다.
구멍무늬토기 : 입술모양에 작은 구멍 무늬가 새겨져있다
테아가리토기 : 아가리 부분에 두툼한 띠를 테두리에 두른 것으로 일본에서도 출토된다
검은간토기, 붉은간토기 : 제의에 사용한 것으로 윤택이 나게 한 토기

(3) 지석묘
청동기 시대의 무덤에는 고인돌(지석묘), 돌널무덤, 독무덤, 토광묘 등이 있다.  
고인돌
우리나라를 주된 분포지로 하는데 울산지역에서도 많은 수의 고인돌들이 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들 고인돌은 판석으로 땅 위에 네모난 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크고 넓은 돌을 얹은 북방식과 땅 속에 판석이나 할석으로 무덤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한 뒤 고임돌을 두고 그 위에 상석을 얹은 남방식, 고임돌 없이 상석을 얹은 개석식(전국 분포) 등 크게 세 가지 형식으로 나누어진다. 대부분 파괴가 많이 되었으며 북방식의 경우 대개 무덤이 도굴되었다. 전국 3만여 개 고인돌 중 2만 여개가 전라남도에 분포한다. 전라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이유는 아마도 무덤형식의 지역적인 유행이라고 본다. 전라도는 오랫동안 지석묘를 고수했고 경상도는 지석묘에서 다른 양식으로 변한 듯하다.
고인돌은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전국 각지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형식도 다양하고 부장품도 일정하지 않다. 후기로 가면 지배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듯 무리지어 있는 모습도 볼 수 있고, 고인돌을 제단으로 사용한 흔적도 발견되고 있다.
돌널무덤
북방 시베리아 계통의 무덤양식으로서 네 벽을 각각 한 장 또는 여러 장의 판석을 잇대어 지하에 관을 만들고 나무판자나 판석으로 뚜껑을 덮은 것이다.
독무덤
이단으로 된 묘광을 파고 바닥에 배수용의 구멍을 뚫은 송국리형 토기를 바로 세워 묻은 후 돌로써 뚜껑을 한 송국리형 독무덤이 알려져있다.
토광묘
묘광을 파고 그 내부에 시신을 바로 묻거나 목관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 청동기 시대의 농업과 목축의 시작은 생산력을 증대시키게 되고 사회내부에서는 점차 신분적인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청동제 무기를 사용하며 부족과 부족끼리 전쟁도 하며 지배계급이 나타난다. 이렇게 등장한 사람들이 바로 족장이다. 바로 고인돌 즉 지석묘에 묻히게 되는 지배층 계급인 것이다. 족장은 청동으로 장식한 말을 타고 비파형 동검과 거울 등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지석묘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증명된다. 고인돌은 무게가 수십 톤, 큰 것은 수백 톤에 달하는 것도 있는데, 이렇게 큰 돌을 옮기려면 많은 씨족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족장이나 군장이 아니면 고인돌을 만들 수도, 묻힐 수도 없는 것이다. 청동기 시대는 이러한 권력자를 중심으로 소규모 국가가 여러 곳에 고인돌을 만들었다.

(4) 시대적 특징과 집자리
청동기 시대의 특징은 농경과 목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데에 있다. 이는 탄 쌀과 불에 탄 잡곡의 출토, 밭 터로 알 수 있다. 농경과 목축의 본격적 시작은 생산력을 증대시키고 사회내부에서 점차 신분적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농경을 하면서 구릉과 충적지를 중심으로 대규모의 마을을 형성하여 정착생활을 함과 동시에 새로운 무덤을 만들었다.
청동기 시대의 집은 대개 움집이나 평야나 하천에서 가까운 낮은 야산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야산 꼭대기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집 자리는 방형과 장방형이 대부분이며 집터 구덩이는 50m 내외가 일반적이다. 바닥에는 난방과 취사를 위한 화덕자리, 배수릉 위한 도랑의 시설물 흔적이 발견된다. 둥글거나 타원형의 집 자리도 있고, 바닥 한 가운데 타원형의 구덩이를 파고 양 끝에 기둥을 세운 송국리형 집 자리도 있는데, 화덕자리가 없고 저장 구덩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단기간 거주한 한시적 주거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5) 청동기 시대 사회의 역사 발전 과정과 지석묘를 통해 본 정치적 엘리트 계층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는 대개 기원전 10세기 경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선 선사문화의 자연에서 채집하던 것과는 달리 곡물을 인위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농업의 비중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강가의 넓은 평야지대로 모였고, 부족단위로 마을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 농업과 목축의 시작은 생산력을 증대시키게 되고 사회내부에서는 점차 신분적인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청동제 무기를 사용하며 부족과 부족끼리 전쟁도 하며 지배계급이 나타난다. 이렇게 등장한 사람들이 족장이다. 바로 고인돌 즉 지석묘에 묻히게 되는 지배층 계급인 것이다. 족장은 청동으로 장식한 말을 타고 비파형 동검과 거울 등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지석묘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증명된다. 고인돌은 무게가 수십 톤, 큰 것은 수백 톤에 달하는 것도 있는데, 이렇게 큰 돌을 옮기려면 많은 씨족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족장이나 군장이 아니면 고인돌을 만들 수도, 묻힐 수도 없는 것이다. 청동기 시대는 이러한 권력자를 중심으로 소규모 국가가 여러 곳에 고인돌을 만들었다.

 

7. 시체 처리 방식 (수장 토장 화장 풍장 천장)
1) 수장 : 시체를 강이나 바다에 장사 지내는 장례법이며, 시체 처리의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 널리 행한 풍습이다. 신라 문무왕이 대표적 수장의 예이다.
2) 토장 : 시체를 땅에 묻는 장례법이다. 매장 풍습은 인류가 집단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매장의 이유는 사자의 복귀를 겁내는 뜻으로 토장을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유력하다고 한다.
3)화장 : 시체를 불에 태워서 처리하는 장례법이다. 화장 후 뼈를 추려 항아리나 상자에 넣어서 땅에 묻기도 하고 가루로 만들어 강이나 산에 뿌리기도 한다.
4) 풍장 : 시체를 매장하지 않고 옷을 입힌 채 관에 넣어 공기 중에 놓아 두는 장례법이다. 풍화하는 대로 두는 경우도 있고 나중에 뼈를 거두는 예도 있다.
5) 천장 : 티벳에서 행하는 가장 보편적인 장례법이다. 티벳인들은 윤회사상을 깊게 믿기 때문에 죽은 후 자기 시신을 신성한 독수리가 먹어치우면 바로 승천하거나 아니면 부귀한 집안에 잉태되어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시체를 독수리가 먹기 좋게 분해하여 독수리에게 주고 남은 뼈는 갈거나 재로 만들어 뿌리면 의식이 끝난다. 수장은 하천을 오염시키고 토장은 세균을 번식시키고 화장은 돈이 많이 든다고 한다. 천장은 오랜 티벳의 장례 문화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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